오뉴블이 정치적인 균열을 '해소'하지 않고 '재현'하는 데서 그치는 것에 질렸을 때, 그러니까 시즌 6의 마지막 화를 봤을 때는 그 선택에 매번 상처받고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마치 충격요법처럼 차별의 폭력을 전시하는 데다가, 등장인물들에게 계속 새로운 좌절이 나타나 지칠 대로 지쳤던 것이다. 당시에는 창작자로서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주 다른 느낌을 받는다 : 오뉴블은 시청자를 만족시키기를 택하지 않고 '쇼가 불만족스러울 정도로 재현에 충실'하기로 했다.

미국의 민영화된 교도소에서 백인 재소자들이 출소할 때 비백인 재소자가 이민자 수용소에 간다는 사실은 실망스럽지만 놀랍지 않다. 그렇지만 파이퍼가 가족에게로 돌아갈 때 블랑카가 이민자 수용소로 간다면 그건 충격적이다. 배경에 와이즈 블러드의 노래가 깔리고 그녀의 약혼자가 철창 밖에서 꽃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면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겪을 일도 없는 남의 나라, 남의 일이 순식간에 코앞으로 다가오고 만다. 블랑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캐릭터)잖은가. 이야기 속 차별이나 폭력 앞에 선 것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건 뉴스나 에세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캐릭터가 몇십 명이나 되고 러닝타임이 91시간이나 되는 드라마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블랑카가 파이퍼와 같이 출소했다면 나는 행복했을지언정 순진한 이야기가 되었을 거다. 아무튼 그건 가짜 행복이다. 사실 제작진은 창작자로서 충분히 책임지고 있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오뉴블은 단 한 번도 재현에서 그친 적이 없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관전할 뿐이었던 시청자의 손을 끌고 들어와서 직접 이 교도소 안에 발붙이고 겪도록 했다. 물론 실제 재소자들의 삶에 비하면 비할 것도 없이 연약한 충격이다. 하지만 보면서 흘린 눈물이나 터뜨린 웃음은 진짜다. 제작진이 조성한 '푸세 워싱턴 펀드'도 진짜다. 고작 TV 드라마가 나에게 평생 가져갈 만한 상처와 사랑을 남긴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오뉴블을 끝까지 봤다면, 마운틴 듀 CM송에 애정 어린 눈물을 지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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